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소식

언론보도

[법조신문 2025. 6. 23.] 살릴수록 ‘죄인’ 되는 의사들… ‘형사처벌 리스크’에 무너지는 필수의료

법조신문.jpg



[법조신문 2025. 6. 23.] 살릴수록 ‘죄인’ 되는 의사들… ‘형사처벌 리스크’에 무너지는 필수의료 



의료사고에 대한 고소와 고발, 형사 처벌이 빈번해지면서 고위험 중증환자 진료를 꺼리고 필수 의료 분야에 종사하려는 의사들이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필요성이 의료계와 법조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 “형사처벌 되면 어쩌나” 의료진 두려움 호소… 진료 위축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이 19일 ‘의료책임제한법 필요성과 문제점’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형사판결 사례 중 295건을 분석한 결과 그 중 198건이 과실과 인과관계가 모두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해당 세미나는 사단법인 착한법만드는사람들(상임대표 김현)이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진행했다.

김 대변인은 이날 ‘의료행위의 형사소송 최소화와 민사책임범위 축소를 위한 대안’을 주제로 발제하면서, 형사처벌에 대한 공포로 필수의료가 위축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 대변인은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위험이 높아지면서 산과, 응급의료, 외과 등 위험도가 높은 필수의료 분야에서 인력 기피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응급의료 현장 의사들은 중증 환자를 최선을 다해 치료해도 결과가 나쁘면 곧바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호소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의료진이 형사처벌을 우려해 위험한 시술이나 필요한 처치를 피하거나 미루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며 “예를 들어 고위험 수술을 앞둔 외과의가 최선을 다해 수술하다 환자가 사망할 경우 본인이 살인자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필요한 수술조차 회피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환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수행되는데 형사 문제가 개입되면 의사와 환자 간 관계가 대립적 법률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며 “의료진은 진솔하게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하지만, 그 말이 형사 재판에서 불리한 증거로 쓰일까 우려해 침묵하거나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의사가 의료과실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대중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이는 해당 의사 개인 뿐만 아니라 동료 의료인 전체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며 “형벌을 통한 응보와 억제 효과만 고려할 게 아니라 그 부작용과 의료인의 심리적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미국 등 선진국 “중과실만 형사처벌”… 대부분 ‘민사소송’

해외 선진국들은 의료과실로 의료진을 형사처벌 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법체계상 의료인의 경미한 과실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영국(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은 의료인의 부주의로 환자가 사망한 경우에 중과실치사로 기소할 수 있고, 환자가 상해를 입은 경우는 민사상 배상 문제로만 처리한다. 중과실치사로 기소하는 경우에도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심각한 사망 위험을 의료인이 인식 가능했지만 부주의하게 무시한 경우 등 중대한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도 의료소송은 대부분 민사소송으로 처리하고 있다. 의사가 고의적으로 환자에게 위해를 가한 경우, 음주 수술과 같이 일반인의 상식으로 봐도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중과실인 경우에 드물게 형사기소를 한다.


캐나다도 의료인을 처벌하려면 고의성에 준할 정도로 중대한 과실이 인정돼야 한다. 이 떄문에 대부분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있고 형사소송은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형법에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심각한 주의의무 위반’에 한정해 유죄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 기준을 법제화하고 있다. 단순 과실에 의한 처벌은 그 과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초래한 경우에 한정하고, 중대한 과실의 경우 그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있다.

● “‘중과실’ 정의 명문화해야…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을”

의료인이 위축되지 않고 본연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중과실 개념 및 유형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중과실’에 대한 정의를 명문으로 두고 있지 않다. 이와 더불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니면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중립적 분쟁조정 기구를 통한 비형사적 해결을 유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이 제도적 개선책으로 제시됐다.

지난해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형사처벌을 제한하거나 면제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을 추진했다. 법안에 따르면 의료인이 책임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한 경우 진료 중 환자에게 경상 또는 중상해가 발생해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형사처벌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뒀다. 또 필수의료 행위 중에는 사고로 환자가 중상해를 입더라도 형사처벌 할 수 없도록 하고, 만약 사망했더라도 형 감면 사유로 인정하도록 했다.

국회에서 개별 의원들을 통해서도 필수의료 수행 중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의 형사책임을 감경·면제하는 내용의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필수의료 직역 및 필수의료행위 수행 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업무상과칠시사상죄에 대한 형사책임 감경·면제 규정을 두는 ‘필수의료지원법’ 등이 발의된 바 있지만 이들 법안은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이준석(사법시험 45회) 법무법인 담헌 변호사는 “경미하거나 불가항력적 결과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배제하고 중대한 과실 또는 고의에 한정해 형사처벌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도입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한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의료인의 무분별한 형사처벌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례법이 입법돼 중립적 분쟁조정 기구가 생긴다면 비형사적 해결을 유도함으로써 분쟁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며 “의료인의 무분별한 형사처벌을 방지하고 의료인의 책임 있는 진료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환자 보호와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공익을 달성하는 제도적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법조신문(https://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