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명 서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야당이 항의 퇴장한 가운데, 여당 주도로 ‘법왜곡죄’ 신설 형법 개정안이 소위를 통과했다. 여당은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조차 생략한 채 본회의 처리를 강행하려 한다. 이는 민주적 입법 절차의 파괴이자 사법부 독립의 정면 훼손이다. 우리는 이 법안이 헌법상 사법부 독립 원칙을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며,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결국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적 피해를 초래할 것이므로 강력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다.
첫째, 법왜곡죄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다.
형법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법왜곡죄는 ‘증거 해석 왜곡’, ‘사실관계 왜곡’, ‘법령의 잘못된 적용’ 등 극도로 추상적이고 해석 여지가 무한한 개념을 처벌 요건으로 삼는다. 그 핵심 개념인 ‘부당한 목적’, ‘법 왜곡’은 명확성 원칙을 명백히 위반하는 모호한 용어로 구성되어 있어, 사실상 어떤 판단이든 정치적 기소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위헌 소지가 농후하다.
법왜곡죄는 사법권 침해 차원을 넘어, 판·검사의 독립적 판단을 위축시키고, 고소·고발 남발과 정치적 사법 통제를 불러올 위험한 도구가 될 것이다. ‘법관의 양심’과 ‘법 왜곡’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이 법안이 얼마나 황당하고 위험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둘째, 법왜곡죄는 형사사법 구조와 정면 충돌한다. ‘기소유예’ 같은 처분은 법왜곡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언제든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성폭력·아동학대 사건 등 증거가 제한적인 사건에서는 검사가 정황증거와 진술의 신빙성 등을 종합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명백한 물증’이 없는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쫓아야 할 수사와 재판이 ‘처벌 우려’를 의식해 방어적 기소·방어적 판결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법정의가 지연되고 수사 대응 능력이 약화되면 고스란히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셋째, 이미 검찰과 법원에는 직무유기·직권남용 등 처벌 규정과 국가배상 책임 제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왜곡죄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은, 제도 개선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사법 장악 시도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검사가 공익을 위해 소신껏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소판단에 대한 ‘절대적 면책’을 인정한다.
넷째,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입법 절차의 졸속성이다. 법사위 대안이 공개되자마자 불과 며칠 만에 본회의 처리까지 예고하는 것은 법조계·시민사회·학계의 의견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형사처벌 규정을 이런 방식으로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
법왜곡죄는 사법개혁이 아니다. 잘못된 법 적용을 바로잡는 장치도 아니다. 이는 사법권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을 제도화하고, 국가의 범죄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후퇴입법이다.
국회는 위헌 논란을 외면한 채 법왜곡죄를 강행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지금 필요한 것은 입법 폭주가 아니라, 독립된 사법체계와 국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냉정한 재검토다.
2025년 12월 3일
(사)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대표 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