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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법 민홍기 자문위원 법조신문 기고문 <상고제도 개선 방향에 대하여>

관리자 2022-11-17 조회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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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신문 2022. 11. 17.


[법조시론] 상고제도 개선 방향에 대하여/ 민홍기 변호사


법원행정처 ‘상고제도 개선 실무추진 태스크포스(이하 ‘TF’)’에서 얼마 전 상고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개선 방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대법관의 수를 6년에 걸쳐 4명 증원하여 현재 14명(대법원장 포함)에서 18명으로 증원하고, 대법원 재판은 전원합의체가 중심이 돼야 하므로 이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증원하는 대법관에 맞추어 소부(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합의부) 1개를 추가로 구성한다. 상고사건을 법정상고와 심사상고로 나누어 상고심 본안심사 전 심사에서 적법한 상고이유가 포함됐는지 여부를 심사해 사건을 걸러내도록 하는 상고심사제를 도입한다. 그 심사는 소부에서 하되, 전담부를 둘 것인지 여부는 제도 운영 과정에서 결정한다.

상고사건을 그와 같이 나누려는 이유는, 현재의 민사소송법 제424조 제1항 제1~6호(절대적 상고이유), 제451조 제1항(재심사유),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제1~6호(심리속행사유),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 제1, 2호(상고이유) 중 일부를 축소하여 법정상고 사건으로 규정하고, 나머지를 심사상고 사건으로 전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유불비나 이유모순, 중대한 법령위반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결국 법정상고 사건은 당연히 상고심에서 심리하여야 할 사건만 남을 것이다. 전체 상고사건의 극소수를 차지하는 사건을 소위 법정상고 사건으로 장식적(裝飾的)으로 규정하면서, 상고사건의 대부분을 상고심사의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상고허가제도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채택된 현재의 심리불속행제도가 현재 사실상 상고허가제도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상고심사제도로 이름만 바꾸어 상고허가제도를 재도입하려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상고심사를 하는 재판부를 전담부에서 할 것인지, 소부에서 돌아가면서 할 것인지는 제도를 운용하면서 결정하겠다고 한다. 속칭 문지방 재판부의 위험성을 우려한 말일 것이다. 장차 상고를 한 당사자나 변호사는 상고심사를 통과하여 대법원의 문지방을 넘어가느냐 마느냐에 목을 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TF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법원을 엄청나게 위험에 빠뜨릴 것이 명약관화하다.

상고허가제도, 현재의 심리불속행제도, 이번에 도입을 검토한다는 상고심사제 등 모두 상고사건을 대법원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대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명분은 대법원의 법률심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상고심 재판과 사실심 재판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혹자는 ‘삼세판’이라는 가당치 않은 말로 대법원의 상고심 재판을 폄하한다. 사후심인 대법원 재판은 사실심 재판을 재판하는 것이다. 어제까지 법정의 주인이자, 재판의 주체가 한 판결에 대해서 오늘은 대법원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다. 사실심 법관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살벌함과 엄정함을 통하여 사실심 재판의 공정과 권위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러한 통과의례를 거침으로써 비로소 그 판결은 법(Recht)이 되고, 국민들로부터 ‘정의’라고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비록 국가 전체 예산의 0.4% 내외의 빈약한 예산밖에 배정받지 못하지만, 자부심 넘치는 사법부를 지탱하는 원천이다.

대법원은 TF에서 제시한 이번 개선 방안을 통하여 법률심으로서의 대법원 기능을 회복시키겠다고 한다. 그런데,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지방법원 항소부나 고등법원 등 항소심 판결 시까지 최소 4명 내지 6명의 법관이 관여하여 선고한 판결에 대하여 법리적인 흠결 등을 지적하여 제대로 된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상고이유서를 보면서 과연 ‘법률심’인 상고심 재판의 충실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상고심 재판에 대하여 법률심으로서 법령해석의 통일 기능을 강조하면서도 변호사강제주의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좋은 판결은 변호사의 좋은 변론과 서면에서 나온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가?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통해서만 상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경우, 상고 제기에 앞서 소송법상 적법한 상고이유의 존부에 대해서 검토될 것이고, 그 결과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상고심 재판의 수요가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명하게 예상할 수 있음(헌법재판소 1990. 9. 3. 89헌마120, 212(병합) 결정 등)에도 대법원이 이번에 상고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이를 외면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변호사강제주의 도입에 대응하여 민사 국선대리제도를 도입하여 금전적 이유에 의한 법률서비스 소외 계층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민홍기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에이펙스 대표변호사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